A형 소설

김철수씨는 버벅거리면서 되물었다.

“뭐라구요? 우리 경수가 A형이라구요?”

“몇번을 말씀드려야 해요. 아드님 혈액형은 A형이라서 B형인 아버님이 수혈을 할 수가 없어요.”

“아니, 아니 그럴리가 없는데… 아니… 그럴리가…”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는 철수씨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간호사가 그제서야 뭔가 느꼈는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이미 경수는 수술실로 들어간 상태였고, 곧이어 수혈팩들이 실린 카트 하나가 나는듯이 수술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혈액들은 사고난 경수의 몸에 부족한 피들을 채워넣을 것이다. 애비인 철수씨는 그럴수 없다만.

“… 혹시, 와이프가 A형이 아니에유?... 아 좀 있어봐. 궁금하잖아.”

옆자리에 앉아있던 눈치없는 아줌마 하나가 말을 걸어오다가 같은 일행인 듯한 사람들에게 면박을 들었지만 철수씨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철수씨의 아내는 B형이었다. 그것은 아내가 경수를 낳는 산부인과에서 의사가 물어왔을때 아내가 또박 또박 답해왔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잇었다. 아내가 B형이라면, 도대체?

“아니 뭔 아빠라는 사람이 자기 애 혈액형도 모르고 그런데…? 아 왜!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이제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하는 옆자리의 아주머니들을 뒤로 하고 철수씨는 수술실 복도를 터덜터덜 걸어갔다. 수간호사가 여기서 씨끄럽게 하시면 안되요! 라고 더 씨끄럽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철수 씨의 머리속에는 B형과 B형이 결혼해서 A형이 태어날 확률을 무한히 계산하고 있을 뿐이었다.

BB + BB = BB
BO + BB = BB, BO
BO + BO = BO, OO

결국, 경수는 B형 아니면 O형이어야 했다. 아니, 철수씨가 BB형이기 때문에 O형일 확률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경수는 누구의 자식인가. 철수씨는 부질없이 아내가 다른 누군가와, AB 형이거나 AO형이거나 AA 형이었을 경우 경수가 AA 형이거나 AO형으로 태어날 확률을 생각해 보았다. 부질없었다. 무슨 소용인가.

BO + AB = AB, AO, BO, BB
BO + AO = AB, AO, BO, OO
BO + AA = AB, AO
BB + AO = AB, BO

어느덧 병원 옥상이었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헐레벌떡 뛰어왔던 병원의 옥상은 생각보다 높았다. 지금쯤 경수는 수술실에서 수혈을 받고 잇으리라. 그러나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 염려도 걱정도 희박하게 사그라들고 잇었다. 오로지 배신감만이, 불타오로는 분노와 배신감만이 철수를 병원 옥상으로 밀어 올렸다.

내 아들이 내 아들이 아니다. 내 딸도 내 딸이 아닐지 모른다. 내 아내가 다른 이와 바람을 피웠다. 그리하여 다른 이의 아이를 낳았다. 난 그것도 모르고 애지중지 길렀다. 아내를 믿고 그 가증스러운 미소를 바라보며 행복해했으나 이제 모든것이 부질없다. 속았다. 당했다. 배신당했다. 슬프다. 밉다. 증오스럽다. 죽어버리자.

“뛸려고?”

철수씨는 놀라지도 않고 옆을 돌아보았다. 환자복을 입고 머리카락이 다 빠져가는 노인네 하나가 휠체어 위에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금연’ 이라는 커다른 글씨게 벽에 붙어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담배를 한모금 더 빨고 가래를 뱉었다. 마치 노린 듯, 그 가래침의 일부가 철수씨의 구두에 튀었다.

“죽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 봐. 니가 알고 있는 그게 과연 맞는지 아닌지.”

뭔가에 홀린 듯, 철수씨는 병원 원무과로 내려가 접수했다. 어떻게 병원 옥상에서 걸어내려왔는지 인식도 못한느 가운데, 의자에 앉아, 간단한 채혈이 잇었고, 그리하여 철이 든 이후로 30년이 넘게 자신이 BB형이라고 알아왔던 철수씨는 자기가 A0형이라는 진단을 받고, 벌떡 일어나 수술실 앞으로 뛰어갔다. 애가 다쳤는데 어딜 쏘다니냐고 아내가 등짝을 때렸다.

덧글

  • 함부르거 2019/06/14 09:37 #

    자기 혈액형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 의외로 많죠. ㅋㅋㅋㅋㅋ
  • 라비안로즈 2019/06/14 12:18 #

    근데 아빠 본인이 B형이라고 말을 해도 의료인들은 혹여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일반인들의 말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검사자체가 쉽기 때문에 일단 혈액형검사 해봅니다. 지금 우리나란 피가 귀해서요.. 일단 가족피부터 검사합니다.
    그리고 이때까지 남자가 헌혈 한번도 안해본게 이상한거.... 군대가면 한번은 억지로 끌려가서 피 뽑아가지 않나요(...) 그때도 혈액형검사 기본으로 할텐데요... 미필이라면 할말은 없지만요...

    저나 신랑이나 헌혈 1회이상은 한 적이 있어서 다 혈액형압니다...
  • YUMYUM 2019/06/14 22:39 #

    이런...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나 봅니다.
    이렇게 되면 철수씨는 삼대독자에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면제라고 해야 겠군요!
    그런데 저는 군대에서 피 뽑힌 기억이 없네요. 헌혈차 올때마다 방공호에 짱박혀서 뺑이치고 있..

    저는 아마 B 형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알아본 것이 국민학교 때 인데 그 뒤로는 알아볼 기회가 없네요.
    캐나다에서는 헌혈하면 헌혈만 하고 결과를 알려주지 않고 정기건강검사할때 피를 뽑아도
    그냥 '문제있네, 문제없어' 정도만 1주 뒤에 전화로 알려줘서 혈액형을 알지 못했습니다...

    결론 : 제가 사알못 (사회를 알지 못함)
  • 라비안로즈 2019/06/15 07:49 #

    ...왜 안알려준대요??;;
    해군이라서 안뽑아가셨는지 아님 제주도라서 안뽑은건지(말라리아등 일부 특정모기 있을 동네에선 안 뽑아요. 특히 철원이나 DMZ같은데서 근무시..) 모.. 캐나다는 왜 안알려주는지 희안하네요. 우리나란 성분헌혈해도 알려주시던..
  • YUMYUM 2019/06/16 04:13 #

    자기 혈액형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딱히 궁금해 하지 않는...? 수혈할 일 있으면 즉석에서 검사를 한대요.
    친구한테 너 블러드 타입이 뭐냐? 라고 물어보니까 그걸 왜 물어보는데? 뱀파이어냐? 라고 하더라구요.

    아... 하나 생각난 게 잇는데 여기는 혈액형 성격설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안궁금해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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