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형인데 한번 만나봐야 하지 않겠냐? 잡상

나는 친척들하고 왕래가 거의 없는 편이다. 아마도 중학교 1학년때 쯤 인가, 무언가 일이 터졌고 그 뒤로 우리집은 명절이고 나발이고 친척들과 왕래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에게 사촌동생이 있었다는 것은 아주 먼 어렴풋한 기억일 뿐 이지 나에게 그다지 기정사실이 아닌 것이다. 누군가가 ‘너 사촌동생은 있냐?’ 라고 물어오면 ‘있… 지 아마?’ 정도로 대답할 만큼. 아주 어렸을 적의 친척동생 형아누나들의 기억은 모호하고 애매하며 흐릿하다. 이름을 말해 보라고 하면 아리까리하고, 나이를 말해보라고 하면 두 손 들 정도로. 무슨 친척도 매년은 아니더라도 최소 5년에 한번은 만나서 얼굴을 익히고 통성명을 하고 안부를 나누어야 그게 친척이지 근 20년이 넘게 한번도 생각조차 안한 사촌동생은 그냥 나한테 남이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그 사촌동생을 만나보라고 말하기 전 까지는.

아버지, 저는 아직 삼촌도 중학교 1학년이후로 만나뵌 적이 없사옵니다. 아버지랑 삼촌이랑 (혹은 우리집과 삼촌집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제가 모릅니다만, 그걸 다 풀어서 이러이러했다 라고 설명해 주신적도 없으면서, 그냥 20년 넘게 인연을 끊고 지냈던 사람을 만나보라구요? 전 그애 얼굴도, 이름도,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몰라요! 그야말로 개뻘쭘한 만남이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 걔의 옥장판을 팔아주게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난 아버지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딱히 꼭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아버지가 삼촌에게 빌려줬던 돈을 이번 기회에 걔가 갚아주게 되었다거나, 혹은 고향 선산이 공동명의라서 반드시 같이 만나서 등기소에 가야 한다거나, 알고보니 우리 가문이 사촌뻘 둘 이상 모여서 합체해야만 괴수를 무찌를수 있는 용사 가문이라던가, 등등), 그렇지 않다면 딱히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니가 형인데 한번 만나봐야 하지 않겠냐?”

형은 개뿔이… 제가 형으로써 그애한테 뭔가 해준적도 없고, 그애가 저에게 동생으로써 뭔가 행동한 적도 없습니다. 20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27년동안 우리는 서로모르고 살았다구요. 그리고 지금 우리들은 열몇살 사촌형 사촌동생끼리가 아니라 제가 마흔이고 그애가 서른 … 몇살이라구요? 네, 서른 다섯. 다섯살 차이가 났었군요. 전 그것도 몰랐습니다. 그래 그애의 기억속에서의 그놈은 8살일거고 저는 13살이겠네요. 도대체 만나서 뭘 말하란 말입니까? 갑자기 마흔살 서른다섯살 어른 둘이 만나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감격섞인 악수와 급기야 포옹을 하고 그날 술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설움을 헤아린다음 말하지 못했던 27년간의 과거사를 털어놓으며 흉금을 늘어뜨리고 의기투합해서 복숭아나무 밑에서 의형제라도 맺… 아니지, 이미 사촌간이지, 암튼 그러란 말입니까? 그리고 아버지 저 술 안마시는거 아시잖아요? 그딴 짓거리는 알콜이라는 의식을 흐리는 향정신성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짓거리인데, 전 금주주의자 입니다만?

싸가지없게 아버지에게 이렇게 내뱉고 나자 아버지는 두말 안하셨지만 그래도 상당히 속상하신 듯 해 보였다. 난 신경 껐지만 말이다. 나중에 동생으로부터 헬프콜이 들어오기 전 까지는 난 아버지가 포기한 줄 알았다. 동생이 전화를 해와서 “형! 아버지가 갑자기 그 누구지? 삼촌네 … 그니까 우리한테는 사촌동생이 되는 그 사람을 만나보라고 하는데, 도대체 뭐야? 우리 그쪽에 빚진거 있어? 아니면 옥장판이야? 혹시 삼촌네가 아버지한테 전도라도 한거야?” 라고 말하기 전 까지는 말이다. 동생도 참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나마 그 당시에 13살이라서 대충 그네들이 몇명인지 사람이긴 한건지 존재하긴 한 건지 어렴풋이나마 기억하는 나와는 달리, 동생은 당시 열살도 안되는 나이였고, 그리하여 녀석의 기억속에는 과연 사촌동생들이라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존재인지 아닌지도 아리까리 했을 테니까. 나를 덮친 것이 ‘아니 갑자기 그때 그 사람들을 이제와서 왜?’ 라는 당혹감이었다면, 내 동생이 느꼈던 감정은 ‘뭐라구요? 나한테 사촌동생들이 있어요?’ 였다고 한다..

물론 난 형으로 써 당연한 태도를 취했다. 즉, 비겁하게 변명하며 빠져나갔다.

“아버지가 나이가 드시니까 가족이 보고싶으시고, 그런데 삼촌한테 직접적으로 말을 하시기는 좀 그러시니까, 아무래도 우리 세대에서 만나고 대화를 좀 하면서 다시 접점을 찾으시나 보다. 이럴때 너가 좀 수고해야 겠구나. 고맙다 아우야. 욕봐라.”
“아니 형 지금 이걸 나한테 떠넘기고 도망가겠다 이거유? 아니 도대체 내가 그사람들을 알기나 한답니까? 만나서 뭐하라구요? 어유 씨발 이딴게 형이라고 야이 18…”
“사랑한다 아우님”

본론으로 돌아가서, 우리 아버지 세대는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래도 니가 형이니까’ 라고. 그분들에게는 그래도 피붙이는 소중한 것이었다. 6.25때 동생을 업고 낙동강을 건너오셨던 아버지. 격동하는 공화국들의 세대교체 속에서 직장을 가지고 일을 하고 산업화와 고도성장속에서 급격하게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내 아버지 세대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련함이다. 그 꼰대스러움과 가끔 뒷목을 잡게 하는 일들을 – 박근혜 복권운동을 하신다거나 – 하시지만 그래도 난 본질적으로 아버지에 대해 증오나 노여움이나 분노 보다는 동정과 슬픔을 느낀다. 그렇게 느끼지 않아도 되지만 난 그렇게 느끼고 싶다. 그건 아마도 이제 나도 마흔이 넘어서 아버지 세대가 받았던 시선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걸 꼰대들의 동질성이라고 콕 찝어 말하면 너무 미울건데 부정할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같은 꼰대 (…) 의 물결을 탔지만, 아버지 세대와 나의 생각과 가치관은 상당히 틀리다. 아직도 5.18 이 폭도들의 쿠테타 시도라고 믿는 분들이 내 아버지 세대이시고, 내 세대는 대가족이 드물어 친척들과의 교류나 인연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어도 엇갈리고 생각도 부딪히지만, 서로 발톱을 세우기 보다는 이제 같이 꼰대라는 물결속에서 뒤로 밀려나 모래사장위에 쓸려온 미역이나 다시마처럼 함께 썩어가는게 아버지나 나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아버지의 가치관으로 무언가를 기대하는걸 내가 하기는 싫다. 그래서 동생에게 맡기는 것이다. 멋진 형 노릇이다.


덧글

  • 히요 2019/06/13 20:52 #

    중간까지 읽다가 설마 "...차마 이렇게 말하진 못하고 네 하고 따랐다" 로 전개되는 건 아닐까 스릴있었습니다. 형이니까 언니니까 핏줄이니까… 도 20-30년 세월을 유대감 없이 떨어져 지냈으면 의미없죠. 옛날과 가족, 친지 공동체 의미도 다르고 정서도 다르고... 그걸 부모세대에게 납득시키기는 어렵겠지만요.
  • YUMYUM 2019/06/14 00:30 #

    그래서 요즘 효도는
    부모님의 사상과 가치관은 건들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무시하는,
    그러나 즐거이 존중하고 공경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더군용.

    당신이 생각하는건 정말 개소리지만 난 딱히 따지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말하는거 1도 이해 안되지만 그렇다고 반박하지 않겟습니다.
    적당히 하세요. 귓등으로 흘립니다. 힘드셨죠. 사랑합니다.

    이렇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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