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들 - 1. 첫번째 조우 소설

도대체 그네들이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난 그네들을 뭉개버리려던 손짓을 멈추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조그만 그것들이 기하학적인 도형을 마룻바닥에 그려놓고 (아마 설탕가루 같은 것을 이용했던 것 같다), 일렬로 맞춰 움직이면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세상 천지에 어디를 가도 집단군무를 하는 개미들의 이야기는 찾아 볼 수 없엇을 것이다.

그러나 내 집의 방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잇는 일들은 개미들의 집단 군무 현상보다 좀더 심각한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개미가 당신에게 말을 걸 수는 없다ㅏ. 개미에게는 발성기관이 없다. 설령 성대와 폐가 있다 하더라도, 개미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개미의 사이즈와 개미와 나와의 무지막지한 (개미의 측면에서) 거리가 그것을 가능하게 할 리가 없었지만, 난 아무튼 내 귀에 울리는 한 개미의 음성을 들었다. 놀랍게도 그 개미는 내 이름을 부르고 잇었다!

“오 위대하신 이여, 감히 제가 그 이름을 다시 부르기 힘든 존재여, 우리들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이 상황에서 환청이라도 들은 양, 혹은 어깨 부근에 뭐라도 붙은 양 털어내며 개미들 수십마리를 발로 밟아 죽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난 고개를 들이밀었다. 개미들 중에서 장식을 걸친(!) 특출나게 더 커보이는 개미가 잇었다. 그녀석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대답해 주시옵소서!”

난 잠시 고민하다가 아주 작게 대답했다.

여파는 끔직했다. 개미들은 아마도 내가 대답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미리 대비하려 했던 것 같다. 내가 대답하기 직전에 서로의 몸을 껴안고 스크럼을 짰던 걸 보면 더욱 그러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형들이 내 입김에 이리저리 이지러졌으며, 몇마리의 개미가 날아갔다. 다행히도 데굴데굴 굴러간 그네들은 곧 빨빨거리며 다시 기어와 군무에 동참햇다. 난 이제 그 가장 큰 개미 뿐만 아니라 다른 개미들의 말도 들을 수 있었다.

'저것봐. 그분이셔.'
'정말 거대하지 않아?'
'이제 우리는 살았어! 소환에 성공햇어!'
'조용! 저분의 심기를 거스르지 마. SKDN이 말하도록 해.'

이네들이 SKDN 이라고 말하는 그 제일 큰 개미가 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놈은 주술사나 대표자, 뭐 그런 것 같았다.

"오오 위대하신 존재여! 우리에게 크나큰 재앙이 닥쳐왔습니다. 제발 가여운 저희를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나는 개미들의 인도로 마당에 들어온 너구리를 쫒아내게 된 것이다. 개미들이 아니었다면 이놈들은 깜쪽같이 철조망 아래를 파고들어와 채소밭이며 닭장이며 다 들쑤시고 다니면서 즐겁게 뷔페를 즐겼으리라. 내가 아껴 키운 순무를 샐러드 삼아서 씨암탉으로 메인코스를 삼아 디저트로는 뒷마당 올리브나무 밑에 있는 개미집을 파헤쳐 먹었겟지. 암튼 난 빗자루를 휘두르며 너구리를 쫒아냈고, 구멍난 철조망을 수리했다.

개미들이 바친 서사시에서 나는 번개를 휘두르며 괴물을 쫒아내었는데 그 내용은 꽤나 조악했다.

"위대하신 이여! 그 이름 길이 길이 칭송받으리라!"

… 등등의 말을 내뱉으며 개미들은 자기들 딴에는 공물이라고 생각했는지 한쪽 끝이 약간 부서져 있는 각설탕 (이녀석들이 어떻게 내 찬장의 각설탕 단지 뚜껑을 연 것일까?) 네개를 가져다 바치고는 사라졌다. 난 관대한 우주적 존재임을 끝까지 연기하기 위해 그 각설탕들을 다시 올리브 나무 옆 개미굴 위에 놓아 두었다. 이제 열광하는 그네들의 환호는 들리지 않았지만, 개미들이 와글와글 몰려와 각설탕을 가져갔다.

덧글

  • 대나무 2019/05/28 15:55 #

    마지막 공물에 의(蟻)신공양으로 개미시체 수십구도 같이 널려 있을 줄 알았는데 고작 각설탕뿐이라니 실망했습니다. lol
  • YUMYUM 2019/05/28 22:27 #

    그... 그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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