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을 보고 실망했던 이유 잡상

알라딘을 보고 왜 나는 실망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스포일러 개만빵.


이어지는 내용

2019년도 벌써 절반이 갔다. 잡상

2019년도 벌써 절반이 갔다.
40살이 되고 나서 인생이 변한것도 없고 그저 머리만 더 빠질 뿐이다.
몸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다. 통풍과 콜린성 두드러기가 재발하여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살아남아야지. 꾸준히 달리고승급이나 승단에 연연하지 않으며 도장에 나갈 것이다.
나의 취미나 이득 보다는 내가 하는 행동들이 아이들에게 끼칠 영향을 먼저 생각해야 겠지.
그리고 결혼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어려운 와이프님의 기분도 잘 헤아려야 겠다.

일은, 잘 모르겠다. 항상 나에게 일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적당한 액수의 돈을 벌려고 적당히 일하는 것이 내 모토였고 바뀐것은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짤리지는 말아야겠지. 그러니까 적당히 하되 어느정도는 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
철인 3종 경기 나가보고 싶었는데. 마라톤 완주해보고 싶었는데.
아직도 가장 멀리 달린 거리는 10km (56분) 이 최고기록일 뿐이다. 42km 를 달려보고 싶다. (무릎이…)

공수도 토너먼트는 나가보았고 어느정도 마음에 드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인지 치고받는 토너먼트에 나가고 싶지 않다. 너무 아프다. 힘들고.
어서 빨리 녹색띠를 따서 애들 가르치는 자리 하나를 맡아 보고 싶었던 마음도 잇었는데… 지금은 그냥 모르겠다.

의외로 주짓수 세미나 티켓을 끊어서 드문 드문 가고 있다.
보라띠, 파란띠를 따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게 아니라 그냥 배워 놓고 싶다.
영춘권 도장은 다시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돌아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일단 너무 멀다.

바이올린과 우클렐레는 손대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대신에 애들 피아노 연습을 같이 봐 주면서 그럭 저럭 바이엘 정도는 뗄 수 있게 될것 같다.
음악을 어느정도 까지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살면서 항상 음악을 하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계속 살면서, 주택융자를 갚아나가고, 애들 학자금으로 꼬박 꼬박 매년 적게나마 넣는다.
애들을 도장에 데려가고, 수영장에 데려가고, 피아노 학원을 시킨다. 학교를 마치고 나서의 활동은 이 세가지가 다다.
아, 한글학교를 이번해 에도 보낼 것이다. 전혀 늘지 않을것 같던 아이들의 한글 독해 실력이 약간 늘었다. 기뻤다.

사고 없이, 별 탈 없이, 2019년의 남은 반도 지나가기를.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잡상

한 식당 종업원의 기고문
최저임금 1만원의 필요성에 대한 잡담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당연히 비즈니스 오너에게 타격이 옵니다. 왜냐하면 인건비가 바로 수직 상승하기 때문이죠. 팁을 주는 식당에서는 팁을 깎는 식으로 대처하는 듯 하지만, 팁을 받지 않는, 그러나 비숙련 노동자들이 많은 제조업에서는 어떻게 대처할까요? 예를 들어 캐비넷을 생산해 내는 소규모의 공장을 생각해 봅시다. 6대의 밀링 머신과 2대의 자동 톱, 그리고 트럭이 오고 살 수 있는 도크가 2개, 그리 크지 않은 자재창고가 있는 그런 공장 말입니다. 생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이 공장은 하루 2교대로 20명씩, 총 4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사무직 6명도 있지만, 사무직들의 연봉은 최저임금과 별로 상관이 없기 때문에 일단 무시합시다. 기존의 최저임금은 12달러 였으며, 공장 노동자들은 직급이나 하는 일의 어려움 또는 노동강도에 따라 대략 13달러에서 15달러 까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평균적으로 14달러를 모두 받고 있다고 칩시다. 계산하기 편할거니까요. 여기서 최저임금이 12달러에서 3달러가 올라서 15달러가 되었을때, 역시 계산하기 편하게 모두가 16달러를 받게 된다고 칩시다. 실질적으로 임금은 모두에게 2달러씩 올랐습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말이죠).

그리하여 매일 40 x 8 x 14 = 4480 달러를 인건비로 지출하고 있던 공장의 인건비는 5120달러로 올라갑니다. 딱히 큰 차이는 나지 않아 보입니다. 고작해야 640 달러가 올랐을 뿐입니다…. 가 아니고, 이게 하루치지요. 한달이면 대략 4주 (20일) 잡았을때 1만 2천 800달러의 차이가 납니다. 1년이면? 15만 달러의 차이가 나게 되죠. 이것은 시간당 14달러를 받는 사람이 1년에 벌수 있는 금액의 약 6배가 조금 넘습니다. 즉, 이 공장은 이제 6명분의 돈을 더 지불해야 하는 겁니다. 생산성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말이죠. 하지만 법이니까 어겼다가는 사업정지라는 크리티컬을 먹겠죠? 그렇다면 공장에서 할 일은 일단 최대한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 선에서 사람을 최대 6명까지 해고하는게 되겠네요. 간단하게 생각해서 6명분의 추가지출이 발생햇으니, 6명을 해고하면 그 치줄분이 줄어들 것입니다. 하지만 미리 말했듯이, 사람을 줄여가는데 생산량이 그대로이기는 힘들죠. 더군다나 해고가 일어나면 노동자들의 사기 또한 떨어지고 분위기도 더러워 집니다. 공장 주인이 대가리가 있다면 함부로 사람을 자르지는 않을 겁니다. 혹은, 자르더라도 뭔가 해결책을 마련해 놓겠지요. 그리하여 대부분의 경우 등장하는게 자동화입니다.

기계는 비싸죠. 졸라게 비쌉니다. 간단한 작업 기계도 자동화를 달고 나오면 몇십만달러를 하고, 크게는 백만달러가 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공장 주인은 대가리를 굴립니다. 정부가 다음해에는 최저임금을 17달러 까지 올리겠다고 발표를 햇거든요. 즉, 내년은 추가지출이 더 발생할거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참에 벼르고 별렸던 자동화 기계를 질러버리고 최소 2년에서 길게는 10년동안 그걸로 뽑아먹을수 있는 이득을 계산하게 되지요. 예를 들어 50만달러 짜리 기계를 하나 구입하면 그 기계가 몇명분의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2명? 3명? 실제로 제가 본 봐로는 생산라인 하나가 통채로 – 12명 – 없어져도 오히려 생산성이 증가했었습니다. 물론 도입시기에는 에러가 많았고 숙달될 때 까지 오히려 상품성이 개판이었지만, 대략 한달만에 기계는 12명분의 일을 12명이 일하던 때보다 더 잘 하게 되더군요. 물건을 집어들어 자르고 깎고 마감하고 못을 박아서 내놓는 그 작업에 6명이 2교대로 붙어서 거의 매일 두세개씩은 불량이 나오고 사람이니까 실수를 햇었는데, 기계는 6명이 하던 것의 200%를 해놓고도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물론 입력 잘못하면 쓰레기를 내놓지만요. 그러면 사무직이 까이는 겁니다).

50만달러의 투자를 뽕뽑는데는 3년까지 걸리지 않더군요. 안그래도 최저임금 상승 덕분에 매년 15만달러 + 내년에는 아마도 좀더 손해를 보게 될 상황이었으니, 지금 50만달러를 질러버리는 것은 결코 나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이제 한번 자동화 기계를 도입해서 빠는 꿀맛을 알게 된 거죠. 특히 사람의 실수가 잦고 불량품이 많이 나오는 공정에 또다시 50만달러 정도 박아서 – 박을수 있다면 – 12명이 아니라 8명 정도 만 자르더라도 충분히 이득을 볼수 있다는걸 이제 알았거든요. 그렇게 공장의 기존 노동자들은 40명에서 28명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8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마무리는 사람이 하고, 재료가 오는 것을 나르고, 고객에게 배달하지만, 그런 것들도 이제 작업도구의 발달과 이동선반의 자동화와 바코드와 자동 스캐닝과 GPS 와 와이파이 덕분에 그전만큼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뭐, 언젠가는 기술의 발달 덕에 그런것들을 쓰게 되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대충 시큰둥했던 그런 신기술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건, 역시 최저임금이 올라서 인건비가 오르니까 어떻게든 사람들을 잘라버리고 남은 사람들로 일을 하려니까 쓰게 됫던 거죠.

그런 신기술, 자동화기계, 새로운 네트워크, 혹은 하청업체를 쓰는 비용이 사람들을 잘라냄으로써 얻는 비용보다 더 크지 않았냐? 라고 질문하신다면, 저도 그렇게 까지 이득이 쳐나올줄은 몰랐습니다. 좀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사람이 하는 일은 실수가 있기 마련인데, 물론 여전히 사람들이 있고 실수를 하지만, 그 비율이 처절하게 낮아졌습니다. 자동화의 강점은, 기계는 무표정하고 실수없이 시킨일을 한다는 거죠. 지각하거나 농땡이를 부리지도 않고, 입력된 값에 따라 죽어라고 기계팔을 돌립니다. 생산성은 얼마나 주어진 시간에 비용을 들여서 만들어 내는가에도 달려 있지만, 무언가 잘못되었을 경우에 그걸 만회하는 비용도 포함됩니다. 용접 마무리 한번 엉뚱한 데 해놨다가 일흔 여섯개를 페기해야 하는 상황은 정말 끔직하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은 사람들의 연봉이 오르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공장의 재정상태는 위태위태 하거든요. 큰걸 질렀으니까요. 그러다가 망하는 공장도 있습니다. 자동화 기계를 들인 만큼 효율이 안나오거나, 투자를 너무 했다가 파산하거나, 뭐 언제나 그런 실패가 있죠. 모든 투자는 위험한 투자입니다. 그러나 제가 본 것들은…

이 모든게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가속화 시킨 것이 최저임금 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하게도, 사업주는 늘어난 손해를 그냥 받아들지 않고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기를 쓸 것입니다. 자선사업하는게 아니니까요. 그게 자동화 기계의 도입이건, 사업의 축소나 합병이건, 업종 전환이나 빠른 은퇴건 뭐건 간에, 사업주들이 그냥 그걸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나누기를 기대하는 건 웃기는 소리죠.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에는 그 도의적인 목표나 인간적인 의미 보다는 그로 인해 발생할 사람들간의 이익관계 변화와 달라질 행동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아야 할 텐데요, 안타깝게도 저는 제가 모자라서 그런지 아니면 제 주위 사람들이 다 저처럼 모자라서 그런지 (끼리 끼리 논다고 그러잖아요?), 보통은 최저임금 인상을 아주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결정 같은 걸로 생각하더라구요. 그에 따르는 불이익과 피해가 생길 지언정, 우리는 그 의롭고 옳은 결정을 철회해서는 아니된다. 그에 따르는 괴로움은 인간으로써 우리가 당연히 짊어져야 하는 존엄성의 댓가다, 등등의 개소리를 한단 말이에요. 물론 저는 친구들을 좋아하니까 ‘맞아 멍멍!’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약간의 경계태세를 높이는 것이 안전한 삶의 방식입니다 잡상

1. 이 나라/도시/마을은 치안이 좋은 곳이니까 괜찮아.
- 고도로 발달된 문명사회, 그 중에서도 치안이 매우 좋은 선진국에서도 강도 살인 강간은 노상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높은 철문을 패스카드와 경비원의 허가로 통과해야 하는 부유층들만이 사는 커뮤니티에서도 강도사건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또한 시간에 따라 장소의 위험도가 높아지거나 낮아질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낮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유모차를 끌고 부부가 산책을 하는 곳이지만, 밤에는 취객들이 비틀거리고 퍽치기를 노리는 비행청소년들이 서성일수 있습니다.

2. CCTV 가 저기 있는 걸
- CCTV 가 사방에 있다 한들, 그것들은 범죄를 녹화할수 있을 뿐, 지금 일어나고 있는 범죄를 막아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CCTV 는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지고 상당한 중량을 가지고 있어 당신이 그걸 떼서 휘둘러 강도의 골통을 깨부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CCTV 는 너무 높히, 그리고 단단히 매달려 있습니다.

3. 나는 내 몸을 지킬수 있는 걸?
- 상대가 당신보다 강할 수 도 있고, 무기를 사용하거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기습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거의 모든 강도질은 기습적으로 흉기를 동반하여 이루어집니다. 연습을 많이 한 사람도 실제 상황에서는 몸이 굳거나 머리가 안돌아 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과신은 몸의경계체계를 낮추어 자기도 모르게 더 위험한 상황으로 본인을 끌어들입니다.

4. 항상 경계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살수는 없잖아요?
- 맞는 말입니다만, 그렇다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행운에 기대는 것 또한 좋은 습관은 아닙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약간의 경계태세를 높이는 것이 안전한 삶의 방식입니다. 혼자서 야밤에 길거리를 돌아다니거나 산에 올라가지 않습니다. 돌아가야 하는게 싫어서 밤에 어두운 지름길을 택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더’ 위험한 짓입니다. 으슥하고 구석진 골목길이나 다리 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호감이 있고 연인관계로 발전할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남녀가 단둘이 밤을 지새는 상황을 피합니다. 술집에서 시비가 걸렷을때 사과하고 그 자리를 즉시 떠나야 하지 벌떡 일어나서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습니다. 홧김에 길거리에 돌을 던지지 않습니다. (큰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대충 이러한,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할때 어느정도 납득이 되는, 너무 지나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과민반응은 아닌, 그런 생활 습관이 당신을 더 안전하게 만듭니다.

5. 내가 잘못된게 아니라 이런 위험한 사회가, 범죄자가 잘못된거 아닌가요? 왜 내가 조심해야 하나요?
- 범죄자와 그 범죄자를 만든 사회가 잘못이며, 그 범죄자를 잡아 단죄하기 위한 경찰행정기관과 사법부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 단, 당신이 이미 범죄를 당하고 난 뒤에 말이죠.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들어가서 무엇이 원인이고 그 원인의 해결책은 무엇인가를 논하기에 제 지식은 너무나도 짧고 정보는 부족합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건 사회나 국가나 정부기관이나 혹은 사람들의 인식은 잘못된게 아니라는게 아닙니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거겟죠. 그래서 그런 잘못들을 지적하고 문제를 대중에게 전파하고 목소리를 높여가면서 사회구조적 모순을 바꾸는건 절대로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옳은 일입니다. 단, 그렇게 하는 것이 단기간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을 것이고, 당장 다음주에 있을 당신의 모임후 귀가길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도 않을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6. 내가 목소리를 높이지 말아야 하나요?
- 아닙니다, 당신이 하는 일은 옳아요. 그래서 더더욱 저는 당신이, 사회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고 그것을 바꿔나가려는 노력을 하는 훌륭한 당신이 강도를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즉, 그렇게 발언하고 전파하고 노력하시면서, 조금더 안전에 유의하시라는 겁니다. 네, 이것은 사회의 문제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당신이 조금 신경을 더 쓰고, 상식적으로 약간 더 경계하고 산다면, 비록 당신의 자존심이나 합리성이 ‘도대체 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왜 그렇게 수고롭게 더 신경을 쓰고 조심하고 그래야 하느냐’ 같은 상처를 받을지는 모르지만, 그럼으로써 당신이 사회를 진짜 더 확실하게 바꿀수 있게 해줄겁니다. 당신이 하는 말이 틀렸다는게 아니에요. 오히려 당신같은 분을 응원합니다. 하지만 그것과 개인의 안전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죠. 그래서,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걸을때 공포에 떨어야 하는 여성으로써의 입장에 진절머리가 나시더라도, ‘나는 당당히 밤길을 걷겠다! 내가 잘못한거 아니잖아!’ 라고 하시지 마시고, 그냥 밤길을 혼자 걷지 않으시는걸 추천드립니다.

7. 이제까지 그래왔는데 또 그러란 말이냐!
- 이제까지 그래왔다면 이제부터 바뀌어야죠. 금방 바뀌지 않을 것이고, 당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중요한 시기에 당신을 우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범죄에 잃고 싶지 않습니다. 힘을 내시고, 더 목소리를 높여 주시고, 그러면서 안전에 유의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예전에 써 놓고 보내지는 않은 글이당.
다시 읽어보니 딱 맨스플레인이네.
안보내길 잘했엉! 결코 좋은 소리 못 들었을거다..

A형 소설

김철수씨는 버벅거리면서 되물었다.

“뭐라구요? 우리 경수가 A형이라구요?”

“몇번을 말씀드려야 해요. 아드님 혈액형은 A형이라서 B형인 아버님이 수혈을 할 수가 없어요.”

“아니, 아니 그럴리가 없는데… 아니… 그럴리가…”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는 철수씨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간호사가 그제서야 뭔가 느꼈는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이미 경수는 수술실로 들어간 상태였고, 곧이어 수혈팩들이 실린 카트 하나가 나는듯이 수술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혈액들은 사고난 경수의 몸에 부족한 피들을 채워넣을 것이다. 애비인 철수씨는 그럴수 없다만.

“… 혹시, 와이프가 A형이 아니에유?... 아 좀 있어봐. 궁금하잖아.”

옆자리에 앉아있던 눈치없는 아줌마 하나가 말을 걸어오다가 같은 일행인 듯한 사람들에게 면박을 들었지만 철수씨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철수씨의 아내는 B형이었다. 그것은 아내가 경수를 낳는 산부인과에서 의사가 물어왔을때 아내가 또박 또박 답해왔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잇었다. 아내가 B형이라면, 도대체?

“아니 뭔 아빠라는 사람이 자기 애 혈액형도 모르고 그런데…? 아 왜!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이제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하는 옆자리의 아주머니들을 뒤로 하고 철수씨는 수술실 복도를 터덜터덜 걸어갔다. 수간호사가 여기서 씨끄럽게 하시면 안되요! 라고 더 씨끄럽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철수 씨의 머리속에는 B형과 B형이 결혼해서 A형이 태어날 확률을 무한히 계산하고 있을 뿐이었다.

BB + BB = BB
BO + BB = BB, BO
BO + BO = BO, OO

결국, 경수는 B형 아니면 O형이어야 했다. 아니, 철수씨가 BB형이기 때문에 O형일 확률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경수는 누구의 자식인가. 철수씨는 부질없이 아내가 다른 누군가와, AB 형이거나 AO형이거나 AA 형이었을 경우 경수가 AA 형이거나 AO형으로 태어날 확률을 생각해 보았다. 부질없었다. 무슨 소용인가.

BO + AB = AB, AO, BO, BB
BO + AO = AB, AO, BO, OO
BO + AA = AB, AO
BB + AO = AB, BO

어느덧 병원 옥상이었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헐레벌떡 뛰어왔던 병원의 옥상은 생각보다 높았다. 지금쯤 경수는 수술실에서 수혈을 받고 잇으리라. 그러나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 염려도 걱정도 희박하게 사그라들고 잇었다. 오로지 배신감만이, 불타오로는 분노와 배신감만이 철수를 병원 옥상으로 밀어 올렸다.

내 아들이 내 아들이 아니다. 내 딸도 내 딸이 아닐지 모른다. 내 아내가 다른 이와 바람을 피웠다. 그리하여 다른 이의 아이를 낳았다. 난 그것도 모르고 애지중지 길렀다. 아내를 믿고 그 가증스러운 미소를 바라보며 행복해했으나 이제 모든것이 부질없다. 속았다. 당했다. 배신당했다. 슬프다. 밉다. 증오스럽다. 죽어버리자.

“뛸려고?”

철수씨는 놀라지도 않고 옆을 돌아보았다. 환자복을 입고 머리카락이 다 빠져가는 노인네 하나가 휠체어 위에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금연’ 이라는 커다른 글씨게 벽에 붙어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담배를 한모금 더 빨고 가래를 뱉었다. 마치 노린 듯, 그 가래침의 일부가 철수씨의 구두에 튀었다.

“죽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 봐. 니가 알고 있는 그게 과연 맞는지 아닌지.”

뭔가에 홀린 듯, 철수씨는 병원 원무과로 내려가 접수했다. 어떻게 병원 옥상에서 걸어내려왔는지 인식도 못한느 가운데, 의자에 앉아, 간단한 채혈이 잇었고, 그리하여 철이 든 이후로 30년이 넘게 자신이 BB형이라고 알아왔던 철수씨는 자기가 A0형이라는 진단을 받고, 벌떡 일어나 수술실 앞으로 뛰어갔다. 애가 다쳤는데 어딜 쏘다니냐고 아내가 등짝을 때렸다.

니가 형인데 한번 만나봐야 하지 않겠냐? 잡상

나는 친척들하고 왕래가 거의 없는 편이다. 아마도 중학교 1학년때 쯤 인가, 무언가 일이 터졌고 그 뒤로 우리집은 명절이고 나발이고 친척들과 왕래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에게 사촌동생이 있었다는 것은 아주 먼 어렴풋한 기억일 뿐 이지 나에게 그다지 기정사실이 아닌 것이다. 누군가가 ‘너 사촌동생은 있냐?’ 라고 물어오면 ‘있… 지 아마?’ 정도로 대답할 만큼. 아주 어렸을 적의 친척동생 형아누나들의 기억은 모호하고 애매하며 흐릿하다. 이름을 말해 보라고 하면 아리까리하고, 나이를 말해보라고 하면 두 손 들 정도로. 무슨 친척도 매년은 아니더라도 최소 5년에 한번은 만나서 얼굴을 익히고 통성명을 하고 안부를 나누어야 그게 친척이지 근 20년이 넘게 한번도 생각조차 안한 사촌동생은 그냥 나한테 남이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그 사촌동생을 만나보라고 말하기 전 까지는.

아버지, 저는 아직 삼촌도 중학교 1학년이후로 만나뵌 적이 없사옵니다. 아버지랑 삼촌이랑 (혹은 우리집과 삼촌집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제가 모릅니다만, 그걸 다 풀어서 이러이러했다 라고 설명해 주신적도 없으면서, 그냥 20년 넘게 인연을 끊고 지냈던 사람을 만나보라구요? 전 그애 얼굴도, 이름도,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몰라요! 그야말로 개뻘쭘한 만남이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 걔의 옥장판을 팔아주게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난 아버지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딱히 꼭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아버지가 삼촌에게 빌려줬던 돈을 이번 기회에 걔가 갚아주게 되었다거나, 혹은 고향 선산이 공동명의라서 반드시 같이 만나서 등기소에 가야 한다거나, 알고보니 우리 가문이 사촌뻘 둘 이상 모여서 합체해야만 괴수를 무찌를수 있는 용사 가문이라던가, 등등), 그렇지 않다면 딱히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니가 형인데 한번 만나봐야 하지 않겠냐?”

형은 개뿔이… 제가 형으로써 그애한테 뭔가 해준적도 없고, 그애가 저에게 동생으로써 뭔가 행동한 적도 없습니다. 20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27년동안 우리는 서로모르고 살았다구요. 그리고 지금 우리들은 열몇살 사촌형 사촌동생끼리가 아니라 제가 마흔이고 그애가 서른 … 몇살이라구요? 네, 서른 다섯. 다섯살 차이가 났었군요. 전 그것도 몰랐습니다. 그래 그애의 기억속에서의 그놈은 8살일거고 저는 13살이겠네요. 도대체 만나서 뭘 말하란 말입니까? 갑자기 마흔살 서른다섯살 어른 둘이 만나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감격섞인 악수와 급기야 포옹을 하고 그날 술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설움을 헤아린다음 말하지 못했던 27년간의 과거사를 털어놓으며 흉금을 늘어뜨리고 의기투합해서 복숭아나무 밑에서 의형제라도 맺… 아니지, 이미 사촌간이지, 암튼 그러란 말입니까? 그리고 아버지 저 술 안마시는거 아시잖아요? 그딴 짓거리는 알콜이라는 의식을 흐리는 향정신성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짓거리인데, 전 금주주의자 입니다만?

싸가지없게 아버지에게 이렇게 내뱉고 나자 아버지는 두말 안하셨지만 그래도 상당히 속상하신 듯 해 보였다. 난 신경 껐지만 말이다. 나중에 동생으로부터 헬프콜이 들어오기 전 까지는 난 아버지가 포기한 줄 알았다. 동생이 전화를 해와서 “형! 아버지가 갑자기 그 누구지? 삼촌네 … 그니까 우리한테는 사촌동생이 되는 그 사람을 만나보라고 하는데, 도대체 뭐야? 우리 그쪽에 빚진거 있어? 아니면 옥장판이야? 혹시 삼촌네가 아버지한테 전도라도 한거야?” 라고 말하기 전 까지는 말이다. 동생도 참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나마 그 당시에 13살이라서 대충 그네들이 몇명인지 사람이긴 한건지 존재하긴 한 건지 어렴풋이나마 기억하는 나와는 달리, 동생은 당시 열살도 안되는 나이였고, 그리하여 녀석의 기억속에는 과연 사촌동생들이라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존재인지 아닌지도 아리까리 했을 테니까. 나를 덮친 것이 ‘아니 갑자기 그때 그 사람들을 이제와서 왜?’ 라는 당혹감이었다면, 내 동생이 느꼈던 감정은 ‘뭐라구요? 나한테 사촌동생들이 있어요?’ 였다고 한다..

물론 난 형으로 써 당연한 태도를 취했다. 즉, 비겁하게 변명하며 빠져나갔다.

“아버지가 나이가 드시니까 가족이 보고싶으시고, 그런데 삼촌한테 직접적으로 말을 하시기는 좀 그러시니까, 아무래도 우리 세대에서 만나고 대화를 좀 하면서 다시 접점을 찾으시나 보다. 이럴때 너가 좀 수고해야 겠구나. 고맙다 아우야. 욕봐라.”
“아니 형 지금 이걸 나한테 떠넘기고 도망가겠다 이거유? 아니 도대체 내가 그사람들을 알기나 한답니까? 만나서 뭐하라구요? 어유 씨발 이딴게 형이라고 야이 18…”
“사랑한다 아우님”

본론으로 돌아가서, 우리 아버지 세대는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래도 니가 형이니까’ 라고. 그분들에게는 그래도 피붙이는 소중한 것이었다. 6.25때 동생을 업고 낙동강을 건너오셨던 아버지. 격동하는 공화국들의 세대교체 속에서 직장을 가지고 일을 하고 산업화와 고도성장속에서 급격하게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내 아버지 세대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련함이다. 그 꼰대스러움과 가끔 뒷목을 잡게 하는 일들을 – 박근혜 복권운동을 하신다거나 – 하시지만 그래도 난 본질적으로 아버지에 대해 증오나 노여움이나 분노 보다는 동정과 슬픔을 느낀다. 그렇게 느끼지 않아도 되지만 난 그렇게 느끼고 싶다. 그건 아마도 이제 나도 마흔이 넘어서 아버지 세대가 받았던 시선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걸 꼰대들의 동질성이라고 콕 찝어 말하면 너무 미울건데 부정할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같은 꼰대 (…) 의 물결을 탔지만, 아버지 세대와 나의 생각과 가치관은 상당히 틀리다. 아직도 5.18 이 폭도들의 쿠테타 시도라고 믿는 분들이 내 아버지 세대이시고, 내 세대는 대가족이 드물어 친척들과의 교류나 인연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어도 엇갈리고 생각도 부딪히지만, 서로 발톱을 세우기 보다는 이제 같이 꼰대라는 물결속에서 뒤로 밀려나 모래사장위에 쓸려온 미역이나 다시마처럼 함께 썩어가는게 아버지나 나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아버지의 가치관으로 무언가를 기대하는걸 내가 하기는 싫다. 그래서 동생에게 맡기는 것이다. 멋진 형 노릇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 라고 말하는 것 잡상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 라고 말하는 것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냉소적이고 염세적이며 사람이 바뀔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지 않는 좌절감에 가득찬 사람일 뿐이다, 라는 글을 읽었다. 그 글에서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이들을 경계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당연한 듯한 말을 하면서 다른이들의 변화나 개선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마약중독자였다가 성공적인 배우로 귀한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예를 들면서 말이다.

그런데 보통 대화중에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혹은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단정적이고 염세적인 발언이라기 보다는 누군가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 쓰는 상투적인 표현이다. 누가 전에 잘못을 저질럿던 이에게 또다시 상처를 입었다, 혹은 입을것 같다, 그런 경우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저 상투적인, 그리고 예외가 존재하겠지만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경우에 잘 들어맞고, 실례를 찾기도 쉬운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다, 너무 고생하지 말고 다른 사람 찾아라’ 인 것이다.

이걸 꼰대스러움이라고 번역한다면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다고 이미 전에 잘못을 저질렀던 사람에게 ‘이제는 그 사람이 바뀌겠죠, 설마 또 그러겠어요?’ 라고 매달리는 아는 지인에게 ‘아 그렇겠지, 사람 바뀌어’ 라고 말해주는 것도 되게 우스운 일이다. 물론 그 지인은 그런 대답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확신을, 동조를 얻고 싶겠지. 그러나 당신하고 별로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굳이 애를 써서 그 확신에 동조해 줄 필요가 없고, 당신하고 상관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런 불확실하고 가능성 낮은 믿음에 공감해 줄 필요가 없다.

사람은 바뀔수 있겠지.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아니고, 아주 극히 낮은 가능성에 걸고 그 사람의 갱생을 기대하기 보다는 그냥 갈아치우고 다른 사람 만나는게 훨씬 더 낫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다. 이게 100% 맞지는 않지.
그러나 우리가 하는 모든 말에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바뀌지 않습니다’ 라고, 정확하게 설명을 하지는 않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보통, 으례, 라는 말이 빠진 것이다. 그걸 적당히 알아서 못듣는다면,

못들을 수도 있지 뭐.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싶을 수도 있지 뭐. 상관이 있건 없건 내가 다른 사람한테 말해주면 뭐해? 어차피 맨스플레인이나 꼰대 소리나 들을건데 뭐. 좋은 말을 해주면 생각없는 이상주의자라고 씹히고 까칠하게 말해주면 염세주의적 비관론자라고 꼽씹힐텐데 안그래? “그냥 누가 뭐라 하면 듣고 있어주면 안돼?” 라고 말하는건 진짜 나아아빴다. 그런걸 바라시는건 너무나 나쁘십니다. 그런건 와이프님이나 요구할수 있는 겁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누가 무슨 말을 하면 하하하 호호호 허허허 웃으면서 아 그렇구나 하고 그냥 신경 끄는게 좋을 것 같다. 당신이 나이가 많을 수 록 (특히 남자일 수 록), 타인의 말에 적당히 웃으며 맞장구를 치고 감정소모 없이 유연하게 흘리는 재주가 필요하다. 그리고 당신의 주장과 생각이나 이제까지 살아온 경험들은 타인과 공유하지 말고 오롯히 당신 안에 차곡 차곡 접어놓고 당신이 앞으로 살아가는데만 꺼내 쓰는 것이 좋다.

그러니까 함부로 ‘그러니까 사람은 안바뀐다니까,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같은 말은 개인 블로그에 쓰거나 아니면 트위터에 익명으로 써갈기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 면전에서 그런 말을 하면 상대방은 당신을 염세적인 놈으로 볼수도 잇으니까. 뭐 까짓거 염세적으로 좀 보이면 어때? 라고 생각한다면 별 상관 없겠다만. 사실 나도 살면서 많이 바뀐거 같은데 제 3자가 보면 거기서 거기라고 한다.

결론 : 그래서 난 잘 모르겟다. (이 짧은 문장을 이리 주절주절 풀어놓을수 있구나!)

여성분들에게 생존 주의를 잡상

일어날 수가 있는 재앙들을 최대한 상상해 볼때,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남성이 겪을 수 있는 외적 사고는 한없이 가능성이 낮은 지진, 지진보다는 가능성이 높은 백두산 분화, 그로 인해 밀어닥치는 쓰나미, 그리고 이런 자연적 재앙들보다는 일어날 확률이 수천만배는 높은 북한의 무력도발 정도가 있겠슴다. 즉, 전쟁이 그나마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 그리고 안타깝지만 여전히 가능성이 있는 – 재앙이죠.

좀비사태는 아직 좀비라는 것에 대해 과학적인 설명이 없으므로 기각. 뉴클리어 아포칼립스는… 애초에 그정도 까지 핵을 터트리면 님이 살아있을 확률이 상당히 적고, 이 좁디 좁은 한반도에서 방사능이 퍼지면 어느곳이건 안전하지 못하므로, 그냥 님 시한부 인생입니다. 차라리 깨끗하게 초반에 골로 가는게 나을수도 있다는 거죠. 거대 괴수가 나타나서 크앙… 넘어갑시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면? 이건 핵전쟁 보다 더 망햇어요.

암튼 간에,

그리하여 일어날수 있는 현실적인 전쟁 이라는 재앙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비할 수 잇는가? 하면,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좆도 없다는게 이 글의 핵심임다. 대한민국의 남성은, 불가항력적으로 닥쳐올 외부로부터의 거대한 재앙에 자기가 딱히 뭔가 할수 있는게 없어요. 아, 탈영은 할수 잇겠지만 그것의 말로는 꽤나 좋지 못하겟죠. 뭔 소린고 하면, 전쟁이 일어나면, 님은 징집됩니다. 이미 예비군이 끝났다 하더라도, 징집될 가능성은 높습니다.

이야 신난다! 사람 죽이는 거 가르치는 군대를 또가요! 근데 이번에는 실전이에요!

그리하여 생존주의가 대한민국에서는 쓰잘데기 없는 소리라는 나오는 겁니다. 핵전쟁 같은게 벌어지면 그게 터지는 가장 첫번째 도시가 서울이 될 가능성이 높고, 국지적인 현대 전쟁에서 사람들은 픽픽 죽어자빠지는데 차라리 징병당해서 헬멧이라도 쓰고 총을 쏘는게 살아남을 확률이 클지도 모릅니다 (라고 프로파간다를 하겠지요. 국방부가). 산속에 숨어 보았자 포탄이 떨어질 거고 네오파르티잔(신빨치산) 이 돌아댕기다가 님을 보겠죠.

그때 전향하실 겁니까?

뭐, 생존주의라는 것은 세상이 망해도 나만은 살아남겠다는 사상을 깔고 조금이나마 더 살아보려고 발악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장식품도 만들고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법도 배우고 라이터 없이 불도 피워보고 물도 자연에서 받아보는건데 이놈의 대한민국은 일단 자연이 별로 없고 대부분의 국토가 시가전의 온상이 될 것이며 거대한 남한 북한 육군들이 강철비의 댄스를 춰대는 충돌의 틈바구니에서 한국남성은 생존이 아주 좆같아질 겁니다.

차라리 여성분들이 생존주의를 파고든다면 유용할지도 모릅니다.

징집당한 남편을 대신해서 가족을 지키는 건 엄마일 거거든요. 뭐, 징집이 시작되어서 어느정도로 끌려갈지는 전쟁의 질과 강도와 시간이 결정해 주겟지만 대충 미성년자 말고는 죄다 들어가는 건 분명하고, 그러다 보면 남아있는 시민들의 정신적 지주는 엄마가 될 겁니다. 혹은 누나. 그러나 전쟁중에 기본의 사회 인프라는 다 개박살 나 있을 테고 슈퍼가면 물건이 없고 군인들이 총질해도 도둑질과 강도질은 끊임이 없을 상황에서,

민간인 총기소지가 불법이었던 대한민국의 치안부재 개막장 재앙환경에서는 여성의 생존기술이 아주 각광받을수 있지 않겠습니까? 빗물받아서 식수 하는건 장마기간이 아닌 이상 한국에서는 개소립니다. 봄가을겨울에 강수량이 적어요. 그러면 물에 염소 타서 먹을수 있게 하는 간단한걸 아는 사람은 물 마시고 모르는 사람은 이질 걸려서 설사를 쫙쫙 쏴대는데 병원은 문 닫았고 약국은 털린지 오래인 거죠. 그러다 설사로 죽는 사람이 나올겁니다.

라이터 있는데 왜 불피워? 라고 하지만 그 라이터가 아주 귀중해 질 거고, 도시가스가 언제 끊길지 모르고 다움주에 휴전이 될지 아니면 북한군이 밀려올지 우리가 북진통일을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나라도 더 먹을걸 챙기고 입을걸 들고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을 지키려면 서바이벌 스킬이 필요할 겁니다. 혹은 무기술이나 격투술이 필요할 지도 모르죠. 집에 있는 식칼로 창만들어서 음식물을 약탈하려는 집단과 싸우는 여전사들이…

여자가 어떻게 남자를 이겨?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잇겠지만, 전쟁나면 어차피 남자들은 다 징집되어 갔을 거라서 남은 놈들 중 강한 남성은 별로 없슴다. 실제로 그런 ‘전쟁중의 음식다툼’ 의 주된 병력들은 성인 여성과 청소년들이죠. 물론 남고딩들은 잘뛰고 잘먹고 키도크고 힘도 세겠지만, 무기를 다룰 줄 알면 양아치 일진들이 몰려와도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그놈들 앞을 막아설 수 있겠죠. 아니면 말구요.



결론 : 여성분들에게 생존 주의를… 아니 이게 뭔 개소리야.




사족 : 아, 한국의 남성들이 겪을 수 있는 '연애가 불가능한 상황' 은 재앙이 아닙니다. 그건 현실이죠. 생존주의적으로는 오히려 당신이 독신인 편을 선호될 겁니다.

남자라서 여자에게 무조건 그러는게 아니라 잡상



 아스파 2019/05/29 01:17 # 삭제 답글 

도대체 난 지랄같이 말을 하겠지만 넌 최선을 다해 내가 힌트도 주지않은 속마음에 맞춰서 내가 원하는 반응을 하고, 그게 안되면 죽을 각오를 하라는 무례하기 그지없는 발상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허락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뭘까...



YUMYUM 2019/05/29 02:05 # 수정 삭제

제가 사랑하는 여자니까 당연히 되는거죠.
여자라고 해도 제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런걸 허락해 줄 이유가 없겠죠?





뭔가 좀 오해가 잇었던 것 같은데, 제가 ‘여자들에게는 이렇게 대해야 합니다’ 라고 말할 때는, 세상의 모든 여자들에게 그렇게 대해야 한다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보통 제가 저렇게 말할때 지칭되는 ‘여자들’ 은 당신의 여자친구나 와이프, 혹은 어머님이나 누님, 여동생이겠죠. 혹은 조금 더 영역을 넓히면 알고 지내고 안면이 있고 꽤나 친분이 있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여성분 정도가 되겠습니다. 즉, 당신하고 아주 많이 상관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슬퍼하거나 상처받거나 괴로워하면 당신이 안타까운 여성분을 말하는 겁니다.

물론, 저는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남성은 일반적인 여성을 어느정도는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녀불평등주의자 입니다만, 그 어느정도라는 건 문을 열어주거나 무거운 물건을 대신 들어주거나 어디에 나갈때 여성 먼저 나갈수 잇도록 기다려 정도이지, 저런 끔직한 감정소모를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으로 감내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댓글 달아주신 분은 그런 착각을 하셨나 봅니다. 남자는 무조건 여자에게 저래야 한다? 그럴리가 없잖아요. 제 경우에는 제 와이프가 1순위이고, 그 다음이 제 어머니와 장모님일 것이고, 그 외에 아내의 친척분들, 정말 좀더 확대하면, 아내가 알고 지내고 저도 안면이 있는 아내의 친구분들이나 지인분들… 까지가 제가 예의를 차리고 감정노동을 감내할 수 있는 한계곘네요.

물론 이것도 순위가 있어서, 아내의 속상함과 짜증과 울분은 제가 과감하게 (정말 용감하게) 인내하고 받아 줄 수 잇겠지만, 아내의 지인분께서 그런 속상함을 털어놓으실때는 제가 아내에게 대하듯 받아주고 이해해주고 곱씹어주고 유연하게 대처하지 않겠죠…. 아니,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아내의 지인분이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할 상황 자체가 일어나는게 거의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결혼한 유부남인 제가 다른 ‘여성’ 이랑 대화하는건 직장 동료/상사분들 중 여성분들과 업무적인 내용을 주고 받는것 외에는 그냥 전부 아내와의 이야기이고, 간혹 집에 전화하거나 처가집에 전화해서 어머니나 장모님께 안부 인사를 드릴때 말고는 그냥 없지 않겠습니까? 아내의 지인분들이 놀러 오시면 전 그냥 커피를 태워 드리고 간식을 내 놓은 다음 자리에서 빠지는 게 보통입니다.

그렇게 따져 보니 정말 지난 10년 간 아내 말고 다른 여성과 ‘대화’ 를 해본 적은 없는 것 같군요. 이걸 역으로 따져 보면 제가 다른 여성에게 감정 노동을 감수하며 그네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준 적도 없다는 겁니다. 사실 이게 맞는 것 같습니다. 결혼한 남자가 자기 와이프 말고 다른 여자랑 이야기를 하면서 그 여자분의 말에 공감해 줄 필요가 있나요?

말이 좀 샜는데,

댓글 쓰신 분께 답변을 드리면, 아니요, 남자라서 여자에게 무조건 그러는게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에게만 그러는 겁니다. 반대로 말하면, 사랑하는 여자에게 그러지 않는것은 나중에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적어도 트집 잡힐 구실이 됩니다. 제가 주절거리는 이야기들은 대충 그런걸 방지하는 이야기죠. 사랑하고 결혼했으면, 잘 살아야죠. 안그렇습니까?


그네들 - 1. 첫번째 조우 소설

도대체 그네들이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난 그네들을 뭉개버리려던 손짓을 멈추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조그만 그것들이 기하학적인 도형을 마룻바닥에 그려놓고 (아마 설탕가루 같은 것을 이용했던 것 같다), 일렬로 맞춰 움직이면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세상 천지에 어디를 가도 집단군무를 하는 개미들의 이야기는 찾아 볼 수 없엇을 것이다.

그러나 내 집의 방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잇는 일들은 개미들의 집단 군무 현상보다 좀더 심각한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개미가 당신에게 말을 걸 수는 없다ㅏ. 개미에게는 발성기관이 없다. 설령 성대와 폐가 있다 하더라도, 개미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개미의 사이즈와 개미와 나와의 무지막지한 (개미의 측면에서) 거리가 그것을 가능하게 할 리가 없었지만, 난 아무튼 내 귀에 울리는 한 개미의 음성을 들었다. 놀랍게도 그 개미는 내 이름을 부르고 잇었다!

“오 위대하신 이여, 감히 제가 그 이름을 다시 부르기 힘든 존재여, 우리들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이 상황에서 환청이라도 들은 양, 혹은 어깨 부근에 뭐라도 붙은 양 털어내며 개미들 수십마리를 발로 밟아 죽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난 고개를 들이밀었다. 개미들 중에서 장식을 걸친(!) 특출나게 더 커보이는 개미가 잇었다. 그녀석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대답해 주시옵소서!”

난 잠시 고민하다가 아주 작게 대답했다.

여파는 끔직했다. 개미들은 아마도 내가 대답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미리 대비하려 했던 것 같다. 내가 대답하기 직전에 서로의 몸을 껴안고 스크럼을 짰던 걸 보면 더욱 그러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형들이 내 입김에 이리저리 이지러졌으며, 몇마리의 개미가 날아갔다. 다행히도 데굴데굴 굴러간 그네들은 곧 빨빨거리며 다시 기어와 군무에 동참햇다. 난 이제 그 가장 큰 개미 뿐만 아니라 다른 개미들의 말도 들을 수 있었다.

'저것봐. 그분이셔.'
'정말 거대하지 않아?'
'이제 우리는 살았어! 소환에 성공햇어!'
'조용! 저분의 심기를 거스르지 마. SKDN이 말하도록 해.'

이네들이 SKDN 이라고 말하는 그 제일 큰 개미가 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놈은 주술사나 대표자, 뭐 그런 것 같았다.

"오오 위대하신 존재여! 우리에게 크나큰 재앙이 닥쳐왔습니다. 제발 가여운 저희를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나는 개미들의 인도로 마당에 들어온 너구리를 쫒아내게 된 것이다. 개미들이 아니었다면 이놈들은 깜쪽같이 철조망 아래를 파고들어와 채소밭이며 닭장이며 다 들쑤시고 다니면서 즐겁게 뷔페를 즐겼으리라. 내가 아껴 키운 순무를 샐러드 삼아서 씨암탉으로 메인코스를 삼아 디저트로는 뒷마당 올리브나무 밑에 있는 개미집을 파헤쳐 먹었겟지. 암튼 난 빗자루를 휘두르며 너구리를 쫒아냈고, 구멍난 철조망을 수리했다.

개미들이 바친 서사시에서 나는 번개를 휘두르며 괴물을 쫒아내었는데 그 내용은 꽤나 조악했다.

"위대하신 이여! 그 이름 길이 길이 칭송받으리라!"

… 등등의 말을 내뱉으며 개미들은 자기들 딴에는 공물이라고 생각했는지 한쪽 끝이 약간 부서져 있는 각설탕 (이녀석들이 어떻게 내 찬장의 각설탕 단지 뚜껑을 연 것일까?) 네개를 가져다 바치고는 사라졌다. 난 관대한 우주적 존재임을 끝까지 연기하기 위해 그 각설탕들을 다시 올리브 나무 옆 개미굴 위에 놓아 두었다. 이제 열광하는 그네들의 환호는 들리지 않았지만, 개미들이 와글와글 몰려와 각설탕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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